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창조교리

by Noah's Grandpapa 2025. 3. 14.
반응형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어둠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위에 움직이고 계셨다. (1:2)

 

창조 이전에는 아무것도 없었나? 종래의 신학자들은 창조 이전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고 보았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하나님은 전능하심을 유지하기 위해서 자신이 창조하지 않은 어떤 재료도 필요하지 않았다”라고 했다. 하나님은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않으시고 자존하시며 전지전능하시기에 창조할 때에도 아무런 재료를 사용하지 않았고 오로지 말씀으로써만 창조하셨다는 것이다(10:17; 44:24; 4:17). 이러한 생각을 “무로부터의 창조 creatio ex nihilo”란 어구로 표현했던 것이다.

 

현대의 우주물리학에 따르면 빅뱅으로 우주가 생겨났다고 한다. 빅뱅으로 빛이 생겨났다. 빅뱅가설은 1:3 증언하는 빛의 창조와 어울린다. 물리학자들은 무슨 물질이 있어서 빅뱅이 발생했는지를 연구한다. 수소 내지는 헬륨 원소가 빅뱅을 유발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우주 공간에는 수소가 가득하다고 한다. 빅뱅 이전에도 물질계가 기존하고 있었다는 것인데 종래의 ‘무로부터의 창조 creatio ex hihilo 신학은 이러한 물리학의 이론과 충돌한다. 과연 그럴까?

 

하늘들의 창조. 혹은 하늘들과 별의 창조. 12 세기 후반 모자이크, 시칠리아의 Monreale 성당. Getty Image

 

종래의 신학 ‘무로부터의 창조’ 관념은 현대물리학의 연구가 제출되지 않은 시대의 관념이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세계의 창조 이전에는 무엇을 하고 계셨나? 성서는 하나님께서 영존하신다고 찬양하고 있다. 하나님은 세계를 창조하기 이전에도 계셨고 세계가 끝난 이후에도 계시는 분이다. 놀랍게도 1:2 빛의 창조 이전의 상황을 진술한다. 빛의 창조는 3절에 보도되고 궁창의 창조는 6절에 보도된다. 빛의 창조로써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고, 궁창의 창조로써 삼차원의 공간이 생겨났다. 3 바로 앞에 2절이 있어 빅뱅 이전의 상태를 진술한다.

 

“그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1:2, 개정).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의 히브리어는 <토후 와보후>인데 ‘땅은 아직 없었다’라고 번역할 있다. <토후 와보후> 이사야서에서 우상은 존재하지 않는 것임을 조롱하는 사용된 표현이다(41:29). 우상의 존재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세계가 창조되기 이전에 땅은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토후 와보후> 무를 가리키는데 주어는 “땅”이다. “땅”이 아직 없었다는 진술이다. 1절은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고 선언하고 이어서 2절은 “땅”은 아직 없었다고 강조한다. 현대의 개념으로 번역하자면 “지구는 아직 생겨나지 않은 상태였다”라고 있을 것이다.

 

<토후 와보후> 놓고 무질서한 카오스(chaos) 상태를 표현한다고 해석하는 시도들이 있다. 그러나 카오스는 이미 존재하는 세계의 혼란상을 표현하는 개념이다. 아직 존재하지 않는 비존재를 묘사하는 개념이 아니다. 땅이 <토후>하고 <보후>하였다는 진술은 땅이 혼란상태에 빠져 있었다는 뜻이 아니라 땅이 아직 창조되기 이전이었다는 뜻이다. 이러한 표현은 하나님의 창조 사역이 땅에 역점을 두고 있음을 강조한다. 앞으로 땅이 창조될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땅을 창조하는 일에 집중하실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땅을 위하여 기도할 것을 가르쳐주셨다. “나라가 임하게 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시옵소서”(6:10).

 

또한 빅뱅 이전에흑암’<호쉐크חֱשֶׁךְ >깊음’<터홈תִּהוֹם > 있었다. 흑암은 빛의 부재를 의미하며 깊음은 공간의 부재를 뜻한다. 빛의 창조는 시간의 시작을 의미하고 궁창의 창조는 공간의 기원을 보도한다. 빛이 창조되기 이전에는 시간도 공간도 없었다. 그러나흑암’은 빅뱅과 함께 빛의 운동을 촉발한암흑물질’(dark matter) 용어가 동일한 점은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래서 히브리어 본문에 존재동사 <하여타 היתה> 사용하여 흑암이 “있었다”라고 표현한 것일지 모른다. 아무튼 하나님께서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에 계셨음은 분명하다. 이것이 ‘무로부터의 창조’ 신학이 의도했던 본뜻이다.

 

성서는 3차원과 4차원의 창조에 한정하여 진술한다. 사람은 3차원과 4차원의 창조에 대해서만 이해할 있는 존재이다. 5차원의 세계는 사람이 있는 세계가 아니다. 창조 이전의 세계나 창조 이후의 세계에 대해서는 어떤 언어로도 표현할 없다. 현대물리학은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이론의 대립을 극복하여 마침내 ‘초끈이론’(string theory)으로써 존재자의 세계를 설명해내는 데까지 도달했다. 이로써 차원의 이론이 주목을 끌고 있다. 망원경의 발달로 인하여 초신성의 폭발을 관찰하고 블랙홀의 촬영이 성공을 거두고 있다.

 

‘무로부터의 창조’라는 오래된 신학은 현대인의 새로운 세계관에 조응하여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증언할 있어야 한다. 근본주의’(根本主義 fundamentalism) 급격하게 변하는 현대인의 의식을 따라잡지 못한다. 현대의 사상적 흐름에 조응하지 못하는 신앙은 아집으로 연명하다가 점점 자기 속으로 퇴영하여 마침내 사라지고 것이다. 기독교는 근본주의를 경계하고 극복해야 한다.

 

성서의 창조신앙을 올바로 이해하려면 ‘근본주의’를 해체해야 한다. 현대의 과학이 제출하는 새로운 연구결과를 부정하는 ‘창조과학’의 시도도 외면당하고 있다. 끊임없이 흘러가는 인간의 의식작용을 외면하고 창조계를 기계론적으로 이해하는 근본주의는 교회의 시대적 유관성(relavance) 파괴한다.

 

가지 지적해야 한다. 성서를 고대의 역사적 문서로만 이해하여 현대의 과학으로 해석하는 방법을 시대착오적이라고 일축하는 합리주의 역사주의적 경향성도 극복해야 한다. 해석학적 순환을 거쳐서 말씀을 뜻을 오늘의 언어로 번역해야 한다. 사람에게 영감을 주어 성경을 기록하신 성령님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우구스티누스로부터 토마스 아퀴나스에 이르기까지 전개해온 ‘무로부터의 창조’ 신학을 더욱 현대적인 언어로 번역해내야 한다. 하나님의 창조는 우주창조에만 국한되지 않음을 1:2 암시한다. 우주생성 이전의 상황과 우주소멸 이후의 상황이 성서에 전제되어 있다. 빛의 창조 이전에도 하나님의 창조는 있었고 종말 이후에도 하나님의 창조는 계속될 것이다. 그래서 2:1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는 말씀이 새롭게 조명해야 한다. 빛의 창조 이전에 ‘하나님의 ()’과 ‘물’() 이미 기존하고 있었다니 말씀은 도대체 무슨 뜻인가?

 

https://youtu.be/3uNDoARZn64

 

 

반응형